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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지원 사연접수 합니다.
의료지원 사연접수 합니다.
작성자|조*서 등록일|2019-02-08 조회수|47 첨부파일|다리사진.jpg
안녕하세요. 저희 어머니에게 인공관절 수술이, 이혼 후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길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사연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1962년생으로 57세 이시며 병원에서 인공관절 수술을 권유 받은 상태입니다. 어머니가 57세의 나이에 관절이 다 닳아버리게 된, 이혼 전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1996년 암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저와 어머니 단둘이 살고 있었습니다. 2011년 여름 경 어머니와 잘 알고 지내던 동생이 울산에서 현대중공업에 다니고 있던 친오빠를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이후, 혼인신고를 하고 울산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생활 중 새아버지는 두 차례 이혼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된 직후부터 새아버지의 상습적인 폭언과 폭행이 시작되었습니다. 폭행의 정당한 이유는 없었습니다. 새아버지의 말에,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을 말할려고 하면, 뭐든 트집을 잡고 발로 다리를 차는 등 무차별적인 폭언과 폭행이 벌어졌습니다.
2011년 가을경 장을 보러 함께 갔는데, 어머니가 콩나물 가격을 깍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인적이 드문 길가에서 새아버지는 어머니의 목을 조르고 발로 다리를 찼습니다. 2011년 겨울경에는 새아버지의 큰집에서 제사를 지내고 나오면서 술에 취한 상태로 어머니를 향해 불만을 쏟아내다가 어머니의 목을 졸랐고, 이에 어머니는 집 근처 지구대로 도망을 가 그 곳에 있는 경찰관들에게 폭행을 당했음을 알리고 지구대에서 숨기도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재혼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이러한 폭행으로 너무나 힘이 들었으나 서울에서 따로 살고 있는 저에게는 차마 새아버지의 폭행에 대해서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함에도 어머니는 현대중공업 현장에서 일을 하고 퇴근하면 다리에 쥐가 난다는 새아버지를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밤 한 두 시간씩 새아버지가 정년퇴직 전까지 다리를 2년 넘도록 주물러 주었습니다 .

시간이 흘러 새아버지의 정년퇴직 시기가 가까워질 무렵 회사에서는 2년 더 연장 근무를 할 수 있다고 하였으나, 당시 새아버지의 간수치도 나쁘고 고혈압에 고지혈증 증상까지 있었기에, 어머니는 새아버지의 건강을 염려해 퇴직을 권유하였고, 새아버지도 본인의 판단으로 연장 근무 없이 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새아버지는 건강상의 이유로 퇴직하였음에도, 이후부턴 본인이 연장근무 하지 않은 것이 어머니 때문이라며 이를 폭언과 폭행의 이유로 삼았습니다.

2014년 새아버지는 정년퇴직을 하면서 울산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인 강원도 철원으로 귀농생활을 하고 싶어 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가 없는 귀농생활은 결과는 강원도 철원 전방지대의 산이었습니다. 화장실도 없고, 수도시설도 없는 컨테이너박스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새아버지가 원하는 귀농생활에 부합하는 밭농사 일을 하게 되었으나, 농사라고는 해 본 적이 없는 어머니에게 밭농사는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약 1,700평대의 밭농사를 어머니와 새아버지 단둘이 하려다 보니 너무나도 힘이 들었는데, 어머니가 꾀병을 부린다면서 새아버지의 폭언과 폭행이 여전했으며, 특히 새아버지는 발로 어머니의 다리를 차는 것이 가장 빈번했었습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어머니는 전방지대 산에 컨테이너 달랑 놓고 살고 있어 주변 어디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습니다. 약 1,700평의 밭에서 고추, 콩, 들깨, 참깨, 고구마, 감자, 옥수수 호박, 가지, 오이, 양배추, 시금치, 배추, 무, 대파, 쪽파, 상추,깻잎, 아욱, 토마토, 참외, 수박 등 농사를 지었기에, 그야말로 자급자족의 생활이었습니다. 문제는 고추 5,000대, 배추 150포기, 옥수수 300대, 깨 4가마니 등 두 식구가 먹고도 남아돌아 농작물이 썩어 버리는 경우가 많아, 어머니는 남는 곡식을 장에 나가 팔든가 어디 판로를 찾든가 아님 농사를 줄이자고 말해 보았지만, 새아버지는 어머니의 말이라면 무조건 무시하면서 아무 말도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썩어서 버리는 작물이 생기면, 전부 관리를 못한 어머니 책임이라면서 또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약 1년 동안의 컨테이너 생활을 마감하고 2015년 새로 지은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새아버지는 철원에서 살집을 지은 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집터를 다시 다졌고, 그 과정에서 약 1주일간 무거운 돌덩이를 직접 들어다 날라서 집터를 다져야 했습니다. 전문가가 아니었기에 시간도 많이 걸리고 힘도 배로 들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돌을 나르느라 어머니는 관절에 무리가 와 팔
다리가 쑤시고 아파왔습니다. 하지만 이사와 동시에 이번에는 논농사도 시작이 되었습니다. 밭농사와 논농사를 어느 누구의 손도 빌리지 않고 어머니와 새아버지 단둘이만 하다 보니 농사에 경험이 없었던 어머니는 손가락 관절 마디마디가 뒤틀리고 온 몸이 너무 아파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에 어머니는 새아버지에게 농사를 줄이자고 애원을 하였으나, 그런 말을 할 때 마다 돌아오는 것은 무자비한 폭행뿐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새벽에 일어나 새아버지에게 아침밥을 해서 먹이고 치운 뒤, 오전 6시30분쯤 밭으로 가 김을 매고 순을 따며 오전 내내 일을 합니다. 그리고 점심때가 돌아오면 다시 집에 와서 새아버지에게 점심밥을 해서 먹이고 치운 후, 다시 밭에 가서 일을 하고 저녁 7시가 넘어서야 겨우 집으로 돌아와 저녁밥을 해서 먹을 수 있습니다. 또 밤이면 밀린 집안일인 세탁, 청소, 뒷정리를 하느라 쉴 틈이 없었습니다. 이런 생활이 2월 말부터 10월까지 계속 되었고, 이와 더불어 약 6,000평의 논농사까지 지어야 했습니다. 새아버지는 이 많은 농사를 돈이 아깝다면서 다른 사람 도움은 하나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 규모가 엄청났기에, 어머니의 몸이 축이 난 것입니다. 또한 장마철이라고 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비를 맞아가며 밭일을 해야 했고,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밭에 나갈 수 없을 때는 집안에서 매실 등 여러 가지 효소를 담그기 바빴습니다. 논농사가 끝나면 바로 김장철이 다가왔고, 직접 농사 지은 배추 150포기에 총각 김치까지 2~3일에 걸쳐 김장을 해야 했습니다. 겨울철이라고 해도 쉬는 날은 없었습니다. 직접 농사 지은 콩으로 메주를 만들어야 했는데, 메주를 만들기 위해선 가마솥에 불을 붙일 땔감을 구해 와야 했습니다. 큰 가마솥에 일주일이 넘도록 콩을 삶고 절구에 빻아 메주를 만들었습니다. 메주 띄우기가 끝나기 무섭게 메주로 된장을 만들어야 했는데,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큰 항아리 4개를 가득 채우고도 남는 양을 만들었습니다. 된장 담근 다음에는 고추장을 담갔습니다. 고추장 또한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큰 항아리로 2개가 넘는 정도로 많은 양을 만들었습니다.이렇게 어머니는 쉴 틈이 없이 일을 하다 보니 50대 나이에 손가락이 뒤틀리고 무릎관절이 다 닳아버린 것 입니다.

2016년 3월경 새아버지는 개가 똥을 많이 싼다는 이유로 집에서 기르는 개를 때렸고 이를 보다보다 참지 못하고 어머니가 그만 때리라고 새아버지를 말렸더니, 개에 대한 폭행이 어머니에게 이어졌습니다. 새아버지는 발로 어머니를 계속 찼고, 순간 어머니가 논두렁으로 떨어지면서 다리를 다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 길로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을 하였고 병원에서 검사를 해보니, 오른쪽 무릎의 반달연골이 찢어지는 상해를 입었고, 이외에도 퇴행성 관절로 인공관절 수술이 필요하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새아버지는 인공관절 수술은 돈이 드니 해 줄 수 없다 우겨, 결국 급한 데로 ‘우측 슬관절 내측 및 외측 반달연골의 찢김’에 대한 ‘관절경 연골판 부분절제수술’후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새아버지는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어머니가 다 망가진 몸으로 자신에게 온 것이라며 비난할 빌미만 제공되었고, 이를 이유로 더 잦은 욕설과 폭행을 정당화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머니가 병원서 퇴원하고 뼈 마디마디가 아파 그전보다 일을 더 못하자, 새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일을 못한다며 비난과 욕설을 반복하였고, 어머니는 폭행이 두려워 말 한마디 대꾸도 제대로 못한 채 벙어리 신세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무서워서 또 어느 수간부터는 폭언과 폭행에 길들여져 그 누구에게 구해 달라 말도 못하며 그야말로 노동력 착취만 당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무릎의 연골이 모두 망가질 정도로 어머니는 하루 종일 극심한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영양분 있는 식사는 하지 못하여 몸은 갈수록 쇠약해져 갔습니다. 2017년 7월 7일 새아버지는 다 먹지도 못할 엄청난 양의 시래기를 만들기를 원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새아버지에게 둘이 사는데 시래기를 많이 만들 필요가 있냐며 먹을 만큼만 조금씩 만들자고 말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새아버지는 화를 내기 시작했고 이에 어머니는 또 무자비한 폭행으로 이어질까봐 겁이 나 집 밖에 있는 비닐하우스로 피신을 했습니다. 어느새 새아버지가 비닐하우스까지 따라 들어와서는 집에 들어오지 말라며 집 현관문을 잠가 버렸습니다. 해가 저물어 어머니가 집에 들어가려고 하였으나, 새아버지는 어머니가 집에 들어가 지 못하게 완력으로 잡아당겨 집 밖으로 끌어냈습니다. 여러번 이러한 상황이 반복이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집에 들어가지 못하니 배가 아파도 화장실도 갈 수가 없었고,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파도 물 한 모금을 마실 수가 없었습
니다. 어머니는 그렇게 이틀 동안 비닐하우스에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이틀 뒤인 2017년 7월 9일 어머니는 너무도 배가 고파 실신 지경이 되었고, 새아버지가 논으로 나가는 걸 보고는 집에 몰래 들어가 컵라면이라도 먹으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새아버지가 어떻게 알고 따라 들어와서는 나가라면서 밖으로 잡아 끌고 발로 차면서 폭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에서 새아버지의 구타가 이어지니 넘어지면서 땅에 머리를 부딪치고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그러던 중 기적적으로 누군가의 신고로 112와 119가 출동하여 주어, 가까스로 어머니는 새아버지의 폭행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나중에 경찰서에 와서 경찰에 신고해주신 분이 이웃에 사시는 분들이라는 것을 알고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그 분들이 도와 주시지 않으셨으면 어머니는 아마도 탈수와 영양실조로 그 자리에서 일어나시지 못할 수 도 있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당시 현장에서 여자경찰관의 도움으로 집에 들어가 간단한 소지품만 챙겨서 119구급차를 타고 철원에 소재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고 현재 서울에 있는 저의 집에서 요양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새아버지는 철원경찰서에 입건되어 조사를 받았으며, 어머니는 새아버지의 폭행과 끔찍한 학대에서 벗어나고자 이혼을 결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위와 같이 어머니는 새아버지의 폭언과 폭행, 학대 및 유기 등으로 결혼 초부터 현재까지 너무도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폭행을 당하고 위협을 느끼면서도 어머니는 어느 순간 판단력을 잃어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했고 새아버지로부터 벗어나지도 못하였으나, 어머니가 농사일을 더 이상 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망가지자 오히려 새아버지는 어머니를 헌신짝 버리듯이 집에서 쫓아내 버린 것입니다.

저의 어머니의 이혼 후, 새로운 인생 2막의 디딤돌이 '인공관절 수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사연을 신청합니다. 저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상담답변 접수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9-02-11 12: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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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일 : 2014년 4월 23일 ]